<알렉시> -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전에 어디선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가 게이 커뮤니티 내에서 몇 안 되는 여성 아이콘으로 추앙 받는 인물이라고 들었는데, 그때는 좀 놀랐지만 생각해 보면 별로 놀랄 일도 아니에요. 동성애자 남편이 이성애자 아내를 떠나면서 남기는 편지 형식을 취한 소설 <알렉시>는 물론이고, 표면적으로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치열한 애증을 다룬 <세 사람>도 어렵지 않게 동성애적 서브텍스트를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니까요. 예컨대 <세 사람>의 주인공 에릭은 소피에 대한 자신의 잔혹성이 그녀의 오빠인 콘라드에 대한 애정 때문임을 주저 없는 어조로 고백하고, 콘라드 역시 병약한 몸으로 에릭을 걱정하여 전선에 뛰어들 정도로 헌신적이었지요. 그러니 소피가 두 사람 사이에서 농락당했다고 생각하며 가출한 것도 무리는 아니에요. 에릭 자신은 눈가리고 아웅으로 양심의 가책을 슬쩍 피하려고 했지만, 작중에서도 대놓고 '저 귀찮은 여자 떼놓고 콘라드와 함께 어디 조용한 곳으로 달아나 오붓하게 살았으면'이라는 심사를 수없이 내비치는 이 남자의 변명을 어떻게 믿으란 말입니까. 차라리 알렉시처럼 "나는 당신을 배반했소만 당신을 속이고 싶지는 않았소...깊이 사죄하오. 당신을 떠나가서가 아니라 너무나 오래 곁에 있었던 것에 대해서."라고 솔직히 사과한 뒤 도망친다면 이해의 여지라도 있을 텐데, 그런 천박한 중상을 믿냐고 적반하장으로 발끈하고 나서니 몇 갑절로 얄미울 수밖에.

그런데 유르스나르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고전에 천착했던 이 사람의 글은 지나치게 고색창연하지 않은가 싶을 정도로 품위가 있어서, 읽노라면 <알렉시>의 작중 묘사처럼 아주 고고하게 살아왔던 한때의 명가를 연상하게 돼요. 차분하고 우아하면서도 고집스러운 문체. 고답적인 한편으로 세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도 않아, 이따금 근심 어린 목소리로 자신의 의도를 설명할 때가 있는데, 사실 그런 변명마저 없다면 모호하기 그지 없는 그녀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어려울 거예요. 알렉시의 경우만 보더라도, 어찌나 은밀한 투로 에둘러 커밍아웃을 하는지, 사전 정보 없이 읽었다간 이 아저씨가 마누라를 버리고 가출하는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할 정도로 조심스럽거든요. 아마 유르스나르가 이 글을 썼던 당시의 보수적인 분위기 역시 이런 조심성에 일조했을 거예요. 동성애자가 자신의 잃어버린 관능을 찾아 처자식을 버리고 떠난다는 이야기는 1929년 당시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게 아니었겠죠. 특히 스물네 살(꽥!)의 젊은 아가씨가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고 이런 주제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겁니다. (물론 그녀는 같은 주제를 다룬 앙드레 지드의 작품들 덕분에 부담감을 덜고 주저 없이 몰두할 수 있었다고 밝혔지만) 35년 뒤 <알렉시>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면서 해설을 덧붙인 유르스나르는, 그 속에서조차 조심성 있는 태도를 견지하는데, 그건 사실 시대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그리 변하지 않았다는 무언의 탄식이기도 해요. 아니, 무언이 아니죠. 그녀는 특유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어조로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까요.

"비록 예전에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이 주제가, 오늘날엔 문학에 의해 흔히 취급되고 이용되기까지 하여, 어느 정도 합법성을 획득한 듯이 보이나, 사실상 알렉시의 내밀한 문제가 요즈음이라 해서 예전보다 덜 고민스럽고 덜 비밀스러운 것은 아닌 듯하고, 또 아주 제한된 특정 집단 내에서 이 점에 관한 토론이 상대적으로 쉬워지긴 했으나, 쉽다는 것이 진정한 자유는 아니며, 그런 면이 일반 대중에게는 어떤 오해나 보다 심한 경계를 초래했을 뿐이다. 주변을 주의 깊게 바라보기만 해도 알렉시와 모니크 사이의 비극은 끊임없이 체험됐고, 성적 현실의 세계가 금지들의 사슬에 묶여 있는 한 지속적으로 체험되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그 금지들 중 아마 가장 위험한 것들은 장애물들이 곳곳에 들어찬 언어의 금지라 하겠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 거부감 없이 그 장애물들을 피해 가고 우회해 가나, 그래도 세심한 정신의 소유자들이나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들은 거의 틀림없이 거기에 부딪치고 만다. 누가 뭐라 해도 이 소설의 중심 주제가 무척 낡았다 하기엔 세태가 너무도 변하지 않았다."

유르스나르는 1987년에 사망했고, 이 해설이 쓰여진 지도 벌써 40여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녀가 천착한 주제는 낡은 것이 되지 않았고, 변함없이 첨예한 화두로 위험시되고 있어요. 인간이 금지의 사슬을 끊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리는군요! '세태가 너무도 변하지 않았다'는 대가의 탄식이 지금까지도 마냥 절실하다니, 후세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by 루리루리 | 2004/07/16 03:15 |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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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7/16 03:18
쓰고 나니까 이게 대체 무슨 얘기인지...신열 때문에 횡설수설이에요. 죄송합니다^^;
Commented by 미로 at 2004/07/16 09:28
꺍 읽고 싶은 책만 맨날 늘고 orz 아유 ㅠ ㅠ 루리루리님 미워요(어이)
Commented by 체셔 at 2004/07/16 11:06
아앗,읽고 싶네요.과연 세태는 너무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 절절히 느껴져 안타깝군요.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7/16 18:56
미로님/ 이것이 바로 궁극의 필살기, "혼자만 죽을 수는 없어욧!"(웃음) 역사물을 좋아하시는 미로님께는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을 추천하는 바입니다. 비록 동양풍은 아니지만 여러모로 좋아하실 듯한 요소가 많은 책이에요=)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7/16 19:08
체셔님/ 그렇죠, 저 글을 보자마자 한숨이 팍 나오는게...유르스나르는 정말 뛰어난 통찰력을 지닌 작가예요.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을 쿡쿡 찌르는 게,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별로 변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미워할 수 없다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람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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