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nescape : Torment

아아악 이게 날 죽이고 있다아아악


오래 전 휘모님한테 빌려달라고 했다가 "이렇게 멋진 이야기는 되도록 다른 작가들에게 알려주지 말아야 하는데..."라는 말을 들었던 문제의 그 게임,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이후 선물로 받았지만 시체안치소 안만 싸돌아다니다가 때려치기를 대여섯 번, 결국 손을 떼고 2년을 책상에 처박아두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글빨도 안 풀리는데 쉬엄쉬엄 한시간만 플레이해볼까...하고 손 대기 시작한 것이...

멈출 수가 없어요 으아아아앙T_T

주위 사람들이 입에 피거품을 물며 추천에 추천을 아끼지 않던 스토리도 끝내주지만, RPG로서의 완성도도 상당히 높습니다. 안 돼...멈춰야 해...이제 그만 끝내지 않으면...하고 절규하면서도 한번 잡으면 서너시간은 그냥 날아가버려요. 결국 요 며칠간은 원고에 제대로 손도 못 대고 줄창 밤샘을 일삼다가,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CD를 서랍 속에 넣고 열쇠로 잠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자물쇠를 따고 다시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살려주세요 흑흑;

그나저나 이거 진짜 무시무시하게 재밌네요. 하다보면 뒷얘기가 궁금해서 도저히 멈출 수가 없는 데다가, 잠시 스토리 공략을 멈추고 퀘스트만 맡아 해결해도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요. 몰입도가 어찌나 높은지 시길의 거리들을 돌아다니고 있으면 창녀들의 지친 듯한 교태, 깡패들의 험악한 눈초리, 물씬한 생선 비린내와 쓰레기 악취, 그리고 레이디 오브 페인의 준엄한 눈초리까지 오관을 뚫고 스테레오로 밀려 들어오는 것 같아요. 정신없이 몰두하다 보니 도저히 정을 붙일 수 없을 것 같던 흉터투성이의 근육질 좀비 주인공이 어찌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 어느 사이에 그와 완전히 동화되어 함께 호흡하고 괴로워하고...센서리움에서 데이오나라의 기억을 읽으며 눈물 흘리는 순간에는 저도 함께 울었을 정도(쬐끔 과장이지만). 지금은 아리따운 두 여인의 암투 사이에서 "하하하, 이것 참 곤란하군, 하하하."하고 뺀질뺀질 즐거워하는 참입니다.

어쨌든 스토리가 본 궤도에 오른 지금, 더 이상 열중했다가는 큰일나겠다 싶어 아예 CD를 동생에게 주고 학원 락커에 넣은 뒤 열쇠로 봉인하라고 시켰습니다. 얘기가 돌아가는 모양으로 봐선 후유증을 감당하기 어려운 쪽으로 매듭지어질 것 같은데, 한 시간이 아쉬운 판국이니 그것만은 아니 되어요; 나중에 천천히, 제대로 음미하고 긴 리뷰를 쓸 생각입니다.

덧 : 고딩 시절을 블랙아일의 마수에 안 걸리고 어찌 잘 넘겼다 했더니, 이제 와서 이렇게 미치고 팔짝 뛰는 꼴이 될 줄이야...곧 죽어도 이 게임 한번쯤은 해 봐야 한다고 최면을 걸다시피 권해 준 ㄱㄱㅇ씨! 당신 정말 벌받을 거야T∇T
by 루리루리 | 2004/06/22 23:08 | 게임 | 트랙백(1) | 덧글(10)
트랙백 주소 : http://azalea822.egloos.com/tb/589007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아겔'네-_- at 2004/10/11 17:35

제목 : 토먼트엔딩봤소...
뭐... 벌써 몇일지난 야그지만... 블로깅을 못했던 관계로 지금 fflush(fpEgloos)할라오... 전해지던대로 스토리와 각종 숨은 재미들도 많은 걸작이었소! 조금씩 '이름없는자'에 관해 알았다고 생각할즈음이면 하나씩 더 터져나오는 새로운 정보들, 그리고 익숙해졌다 싶으면 또 특이한게 튀어나오는 세계관(...그렇게 거창하게 아니더라도 곳곳에 상상을 자극하는 인물, 아이템...). 굉장히 싫증을 잘내고 귀찮은걸 싫어하는 타입이라 발더스 시리즈는 물론이고 두번 다시 플레이하기 싫은 게임;;;이긴 하지만 음악은 ......more

Commented by 지케이오 at 2004/06/22 23:20
헉, 복벌이라니 그건 뭘까나? -_-;
Commented by 지케이오 at 2004/06/22 23:21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누누히 말했지만 플레인 스케이프 토먼트를 하고서 정말 큰 감동을 느꼈다고 말한다면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르지만 무조건 친구를 삼을 수 있습니다!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6/22 23:21
아냐, 복(하고 줄 쫙 긋고) 벌.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6/22 23:24
아, 그럼 나 조나단씨 친구? 아이져아>_<
Commented by chatmate at 2004/06/23 00:15
이런~~ 루리루리 님은 의외로 빠지기 쉬운 타입?

재미있게 읽었었습니다. ^^;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6/23 00:21
아하핫 저 진짜 되게 단순해요^^ 맘에 드는 거 있으면 만사 제치고 거기에만 몰두하는 타입. 근데 이 게임이 유난스레 무서워요. 오랫동안 묵직한 RPG와 거리를 두었던 터라 더 정신없이 빠져드는 것 같기도 하고요.
Commented by 리노 at 2004/06/23 00:29
플레인스케이프라.. 아스트랄의 세계
Commented by narsil at 2004/06/24 07:40
루리루리님의 천리안 계정이 장렬하게 폭발한 이래, 계정 찾아 삼만리... 여기 계셨군요. ^^;

토먼트는 너무너무 멋진 게임이죠. 이 제작사 특유의 마무리 대충하기가 피눈물이 났지만.. 그래도 구공화국의 기사들보다야 납득이 가는 구조이니 뭐..

플레인스케이프는 trpg쪽을 입수해서 한번 해보고 싶은 놈입니다. 기존의 d&d의 틀을 벗어난(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아왔던?) 세계관을 마구마구 써대는게 너무나 맘에 들어요.. T_T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6/26 21:27
리노군/ 사실 AD&D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이 없었는데, 이번에 토먼트 하면서 이것저것 뒤지다 보니 다른 캠페인들도 너무 궁금해졌어. 이래서 다들 AD&D 기반의 소설이 어쩌구 저쩌구 말이 많구나 싶기도 하고...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6/26 21:46
narsil님/ 와아 날실님 어서오세요>_< 계정 소실 이후 많이 걱정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알고 와주셔서 정말 기쁘네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루리루리 인생 23년, 과히 헛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눈물).

토먼트, 말만 들었을 땐 그렇게 멋져? 하는 기분이었는데, 한번 몰입하기 시작하니 정말 끝장이더라구요. 플레인스케이프의 세계관, 특히 인간적인 '선택의 문제'들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저도 꼭 한번 이 캠페인으로 trpg를 즐겨보고 싶어요. 내 선택이 나비효과처럼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가 다른 인간들의 운명까지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도 경이로운 사실인지, 요즘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절실히 느끼고 있답니다.

:         :

:

비공개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