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에> - 이토 준지
(4년 전 다음 칼럼에 연재했던 만화평 중의 하나, 이토 준지의 <토미에>입니다. 당시 썼던 <알렉산드라이트> 리뷰를 찾으려고 CD를 뒤졌는데 미처 백업하지 못한 모양이라...아쉬운 대로 이거라도 올립니다. 지금 읽어보니 이래저래 좀 민망한 글이군요^^;)

이토 준지는 일본은 물론 한국에도 공포 만화의 붐을 불러 일으킨 작가입니다. 그는 치과 기공사로 일하다가 87년 <토미에>로 우메즈 카즈오상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공포 만화 작가로 출발하여, 현재 미즈키 시게루와 우메즈 카즈오의 계보를 잇는 공포물의 차기 주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작품 중 <토미에>,<소용돌이>,<사자의 상사병>,<악령의 머리카락>,<악마의 이론>,<교수 기구>,<오시키리> 등이 영화·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며, 그 외에도 소용돌이나 토미에 등의 작품을 소재로 한 갖가지의 귀여운(끔찍한?) 캐릭터 상품 등이 연달아 발매되는 등 공포작가로는 드물게도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바 있습니다.

그의 만화를 본 사람들의 상당수가 "불쾌하다", "기분 나쁘다"라는 등의 평을 합니다. 물론 장르의 특성상 다분히 엽기적인 그림이 곳곳에 삽입되어 있고, 분위기 자체가 워낙 암울하여 자연히 불쾌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작가의 만화가 마치 마약과도 같이 사람들을 사로잡으며 공감대를 얻어내는 까닭은, 근간에 깔려 있는 것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시각적인 공포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원초적인 추악함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단편들은 대부분 극히 평온한 일상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상상을 초월하는 기괴한 사건들이 현실을 잠식하고, 마침내 주인공들의 정신마저 좀먹으며 파탄으로 몰아갑니다. 특별한 상황 설정 하에서가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배경을 극단적으로 왜곡하며 암울한 결말로 끌고가는 것이 이토 준지 만화의 특성입니다. 그의 작품 속에서 일어나는 공포스러운 사건들은 대부분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작품을 접한 독자들이 재미 이전에 일단 불쾌감을 맛보는 이유는, 무엇보다 우선 인간 본질의 역겨운 그림자를 눈앞에 둔 충격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특성이 집대성되어 두드러지게 나타난 대표작이 바로 이 작품, <토미에 富江>입니다. 작품의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인 '토미에'. 그녀는 보는 사람을 매료시키고 뒤흔드는 놀라운 마력을 가진 미녀입니다. 그러나 그녀를 사랑하게 된 남자들은 모두 그녀에게 살의를 느끼고, 그 육체를 갈기갈기 찢는 것으로 극단적인 애정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이 정도의 설정이었으면 그저 엽기 살인을 소재로 한 평범한 만화였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포 만화. 주인공인 토미에는 바로 손가락 하나에서도 다시 태어나는 무서운 재생능력을 지닌 요괴였던 것입니다.

토미에는 19세기 말 유럽의 문화계를 잠식했던 '팜므 파탈 femme fatale'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팜므 파탈-소위 요부(妖婦)를 일컫는 이 단어는, 세기말 여성의 지위 상승에 대한 남성들의 상대적인 열등감과 두려움이 여성을 잠재적인 위협으로 치부하게 되면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바기나 덴타타 vagina dentata(이빨 달린 여성의 성기)-즉 거세공포증으로까지 극단화되는 이 여성 공포 현상은 여러 예술 작품을 통해 빈번하게 묘사되었고, 치명적이지만 결코 저항할 수 없는 악마적인 여성상을 널리 유행시킵니다. 남성의 피를 빨고 있는 뭉크의 흡혈귀나 거세당한 성기를 들고 있는 클링어의 살로메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팜므 파탈이었다면, 이토 준지의 토미에는 20세기 말에 나타난 새로운 요부의 상징입니다.

이토 준지는 한국에서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여성에 대해 공포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일본 여성은 귀엽고 순종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 않습니까?" 라는 기자의 질문에 "일본 여성이야말로 두려운 존재다. 그녀들은 정말로 무섭다."라고 대답하여 명실상부한 바기나 덴타타의 심리를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토미에는 그런 그의 심리가 빚어놓은 가장 아름답고 두려운 캐릭터입니다. 사람을 압도하면서도 동시에 사람에게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소녀. 몸이 조각나면 무한으로 증식하여 또다시 자신의 사냥감을 찾아 나서는 소녀. 자신에게 반한 사람을 무조건적인 파멸로 몰아넣는 소녀. 이토록 강한 흡인력을 가진 요괴가 바로 다름 아닌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추악한 창조물이라는 점에서, 그 공포가 더욱 심층적인 구조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최초의 단편에서 토미에는 그저 도덕관념이 결핍된 방자한 여고생으로 등장할 뿐입니다. 그러나 불륜의 관계였던 담임 다카기 선생에게 살해당하고, 그 시체가 같은 반 급우들에 의해 토막내어져 버려지자 그녀는 요괴로 다시 태어나 그들 앞에 돌아옵니다. 그녀를 원하지만 소유할 수 없었던 남학생들, 그녀에게 질투를 느끼며 증오감을 품고 있던 여학생들, 그녀의 존재가 방해가 되었던 담임 선생에게 토막내어진 그녀의 몸 파편들은 바로 그녀에게 칼질을 한 사람들의 욕망 하나하나를 반영합니다. 그래서 추하게 일그러진 그 욕망의 파편들은 다시 하나의 개체로 성장하여 다른 먹이를 찾아 떠나고,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끝없이 증식해갑니다. 더불어 평범한 것처럼 보였던 일상의 사람들에게 깃든 어두운 그림자가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작품 속에서 그녀는 두 번 인간에게 기생합니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심었던 여학생의 몸과, 그녀의 신장을 이식했던 환자의 몸을 통해 숙주를 잠식하고 자신에게 동화시키는 놀라운 번식력(?)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명백하게, 토미에가 인간의 기저에 뿌리를 두고 가지를 뻗는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는 메타포입니다. 사람들이 그녀의 마력을 증오하면서도 외면하지 못하고 이끌리는 이유는 토미에가 결국은 타자(他者)가 아니라 그들의 일부분을 반영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깨닫게 되면 그녀를 갈기갈기 찢는 것으로 도망치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그녀를 파괴한 사람들이 결국은 자기 파멸로 치닫게 되는 것이 이를 입증합니다.

이 작품 속에서 사람들은 결코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녀의 매력에서 도망칠 수 있었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예외의 경우가 최후까지 그녀에게 저항했던 사진부의 츠키코 정도).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비참하고 처절한 인물은 다름아니라 인간들에게 수없이 물어 뜯기고 찢겨야만 하는 수많은 토미에들일 것입니다. 그녀는 "토미에는 하나면 족해"라는 말로 다른 자신들과 서로 죽이는 행위를 거듭하여 수를 줄이고자 하지만, 결국 그런 시도는 인간의 욕망의 수 앞에서는 무색하기 마련. 작품이 후반에 도달할 때까지 이루 셀 수 없는 토미에들이 끝없이 태어나게 됩니다. 그에 비례하여 자신의 추악함 속으로 함몰되는 인간들 역시 늘어나기만 합니다.

어떤 구원도 제시되지 않는 암울한 세계에서, 서로 상대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일만을 되풀이하는 세기말의 인간들. 종말에 대한 두려움은 결코 외부의 재앙이나 초월적 세계의 징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추악한 내면을 바라보게 된 인간들의 혐오감에서 싹트는 것입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인간 자신. 토미에는 미모의 여성으로 형상화된 그들의 그림자입니다. 이토 준지는 이 아름답지만 소름끼치게 두려운 여성을 통해 교묘하게 인간의 앞에 거울을 세워 그런 어둠으로 시선을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마주하게 되는 감정을 우리들은 공포라고 부릅니다.
by 루리루리 | 2004/06/17 23:16 | 만화/애니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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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十五夜 at 2004/06/18 10:34
이런 멋진 글을 민망하다고 표현하시다니...(笑)

'구원이 없는' 이야기란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이토 준지의 작품들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습니다. 결말이 암울한 작품을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구원에 대한 어떠한 '실마리'도 남겨놓지 않고 그저 암울하기만한 결과만을 내놓고 마무리짓는 그의 방식은 여러모로 저와는 맞지 않더군요.

...라곤 해도 이토 준지의 작품들 중 왠만한건 다 본 것같으니 정말 자신과 맞지 않아서 싫어하는게 맞는지 의문이 드는군요...;;;
Commented by chatmate at 2004/06/19 00:05
짠짠. 안녕하세요~

따로 글 쓰는 곳이 없어 여기에 남깁니다. 잘 지내셨죠? 건강은 괜찮으신가 걱정 많이 했답니다. 어떻게 지내실까 찾아다닌 적도 있었는데, 어떻게 거꾸로 먼저 연락을 주셨네요 ^^;

저도 언제 만들었는지 이글루스에도 ID가 있네요. 통 쓰질 않았는데 루리루리 님 같이 훌륭한 분들이 이글루스를 많이 쓰고 계시니 어떡해야 할지 고민이예요.

4년 전이라... 저도 어릴 때 썼던 글을 읽어보면 기분이 묘하더군요. 남성이 여성에게 느끼는 열등감은 꽤나 이야기할 꺼리가 많은 화제죠. 이런 류의 화제를 다룬 유진 님의 글을 읽을 때면 -특히나 유진 님의 젊은 나이를 생각하면- 상당히 인생을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유진 님 글 보면서 그런 생각 많이 했어요, 옛날에도. (애인 있다고 하셔서 실망하기도 했었는데 히히 ^^; )

유진 님과 유진 님의 글을 만난건, 제겐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무척 유익한 만남이었습니다. 요즘 다시 한동안 힘들었는데, 또 한 번 힘을 얻게 되는군요. 고마운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네요. :)

부담 없이 자주 놀러올께요. 무거운 글에 가벼운 댓글 달아도 되죠? (헤헤)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6/19 15:17
十五夜님/ 아잉 좋게 봐주셨다니 기뻐요(수쥽)

'구원이 없다'라는 점에서 제일 끔찍했던 것은 단편 중에서도 그것, <교수 기구>. 왜 있잖아요, 사람 머리랑 똑같이 생긴 올가미가 허공을 떠다니다가 머리의 주인을 확 낚아채서 목졸라 죽이고 대롱대롱 매단 채로 돌아다닌다는 얘기...어휴 그거 정말 끔찍했어요. 나중에 꿈에까지 나왔더랬죠. 하기야 진정한 '공포'란 본질적으로 구원에 대한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거지만, 그래도 밑도끝도 없이 존재를 잠식해 들어오는 부조리성의 섬뜩함이란...

근데 그 끈적끈적한 찜찜함에도 불구하고 있으면 보게 되니 신기한 일이죠. 최근 나오는 것들은 예전 같지 않아서 영 심심하지만요^^;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6/19 16:10
chatmate님/ 꺅 와주셨군요>_<)/ 정말 오랜만에 뵈어요, 그쵸? 우연히 네이버를 돌아다니다 들어간 블로그가 chatmate님 댁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 그 반가움이란...다시 인사드릴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새삼 VT에 들락날락하던 시절이 생각나서 가슴이 찡하네요T∇T

그런데 불초 루리루리를 그렇게 높이 평가해주셨다니, 부끄럽습니다. 사실은 엄청 게으르고 경박한 인간인데...지난 글들을 읽어보면 그 미숙함에 절로 귓불까지 붉어지는걸요. 지금도 부끄럽지 않은 글을 세상에 내보내겠답시고 몇 년째 원고에 매달려 있지만, 번번이 한계에 부딪혀 좀체 나아가질 못하고 있답니다. 무서워요. 벽 너머에 뭔가 어른어른 빛나는 게 보이는데, 닿을 듯 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이. 여기까지인가 하고 낙담하다가도 잘 풀리면 조금씩 나아가지만, 그게 다른 분들 눈에는 아집의 결정체로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6/19 16:11
chatmate님/ (글자수 제한 때문에 이어서) 어째 또 재미없는 얘기를 해 버렸네요^^; 변함없는 마음으로 지켜봐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건데. 자괴감에 시달리면서도 이 길을 선택하길 잘했다 라고 느끼는 것은, 그게 인연이 되어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고 그분들께 따스한 격려를 받을 때랍니다. chatmate님이 남겨주신 글로 저도 새삼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주 들러주세요. 짧게라도 덧글 달아주시면 무척 행복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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