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기
1.
15일.

6월 15일.

남은 시간은 15일...

...처음부터 기한에 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2.
오랜만에 다운되어서 사흘간 땀 뻘뻘 흘리며 잠만 잤다. 이대로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나흘째에 회복. 잠깐, 다행이라고? 갈 길은 요원한데 시간은 빠듯하고, 이제는 모니터만 봐도 토기가 일어난다. 눈을 붙이면 눈꺼풀이 경련하고 고막은 이명으로 요동친다. 말줄임표 하나로 세 시간을 고민하고 쉼표 하나로 사십 분을 골몰하는 게 네가 생각하는 프로 근성이냐? 그건 망집이야, 바보같은 아가씨야. 상황을 봐서 물러날 땐 물러날 줄도 알아야지.

그러나 자존자(自存者)이자 검은 악마의 군대를 물리치신 승리자 붓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몸의 가죽, 힘줄, 뼈만 남는다 해도, 또는 내 몸의 살점과 피가 말라버린다 해도, 인간의 용기, 인간의 노력, 인간의 결심에 의해 획득될 수 있는 것을 얻지 못하는 한 나의 정진 노력은 끈질기게 지속되리라." 어쩌다 96년판 인도철학 제 6권을 펼쳐들었을 때 이 글을 보고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그렇지. 눈앞의 아픔에 겁먹을 것이면 아예 시작을 말았어야지. 지금까지 몇 번이고 약빠른 타협으로 자신을 비루하게 만들었던가? 자기 연민과 회의로 목마른 개처럼 헐떡댈 시간에 한 줄이라도 더 써야지, 나를 나로 만들어야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혀를 물어 끊을 기세로 몸을 던지자.

3.
그러니까 이거, 육체 노동이라니까. 오후 일곱 시부터 다음날 새벽 다섯 시까지 밥먹고 화장실 가고 중간중간 십분씩 쉬는 것 제하면 풀가동이니 육체 노동 맞잖아.

4.
그래도 책은 읽어야...아예 안 읽으면 감각이 사라져서 쓰다가도 금세 방향을 잃고 어리버리한다. 밥먹으면서 읽고 목욕하면서 읽고 변기에 앉아서 읽고 하다 보면 못해도 하루에 한두 권은 꾸준히 읽게 되는군. 원고만 끝나면 여행용 트렁크를 질질 끌고 서울 시내 헌책방 순례를 나가고야 말테다. 잔뜩 사들고 와서 침을 질질 흘리며 열 권 스무 권씩 읽고 읽고 또 읽어야지.

5.
푸르트벵글러의 베토벤 교향곡 7번 실황 녹음을 듣고 있으면, 중간에 몇 번씩 잔기침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자기의 기침 소리마저도 길이길이 후세에 남게 되리라는 사실을 예상이나 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들으면 꽤 재미있다. 중간에 왈칵 재채기라도 터뜨렸으면 두고두고 놀림감이 되었겠지. "아, 이제 곧 그 얼빵한 사람이 방정맞게 재채기하는 부분이 나와~"하는 식으로(웃음).
by 루리루리 | 2004/06/15 20:55 | 혼잣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