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자로의 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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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자로의 표범>

(독백)
절판된 책을 찾아 헌책방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대여점 도장이 찍히지않은 헌책만을 찾아 다니는
산 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이태원 이슬람사원 높이 올라가 양키얼굴이나 한번 보고오는
원서로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나면 관시리즈 읽었단 얘기 자고나면 점성술살인사건 읽었단 얘기
나는 지금 '고구마'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대형서점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지하창고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포'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오랜만에 왔다가 빈손으로 갈 순 없잖아.
세로쓰기라도 산 흔적일랑 남겨 둬야지.
지갑속 2만원은 가뭇없이 사라져도
헌책 몇 권 담은 비닐봉다리로 타올라야지
묻지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일어중역본만
고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애호가의 저미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독백)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보니 범인이름에 동그라미가 쳐있거나 세로쓰기였을 때
그것을 위안해 줄 아무것도 없는 보잘것 없는 명세서를
허공에 돈 날린 기분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건
세로쓰기 때문이라구..
세로쓰기가 눈을 얼마나 피곤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
원서나 다름없이 피곤하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지.
너는 삼중당문고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삼중당문고를 사랑한다.
너는 자유문고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자유문고를 사랑한다.
너는 관시리즈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관시리즈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나는 사랑한다
화려하면서도 어색하고 멋질 것 같으면서도
기분 확 잡치게 하는 짜치는 삽화에 건배.


헌책이 가치있는 건 못 구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지
나만 보니까 즐거운거야.
옛날에 봤다는 사람도 학교도서관에 있다는 사람도
지금 책장엔 책이 없는 것.
나만 보는건 즐거운거야.
고려원 문고는 영웅문으로 돈벌어 추리소설로 날려버린 회사의 정열
고려원 목록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모두를 잃어도 "유니스의 비밀"은 꼭 봐야하는 것
그래야 루스렌들을 읽었다 할 수 있겠지.


(독백)
"의문의 살인사건"이 "ABC 살인사건"일지라도 한가닥 책등으로 책은 남으리
제목만 바꿔 나온 책이라도
한 줄기 슬픈 곡소리로 책은 남으리.
나나출판사가 인터넷헌책방을 휩쓸어도 다시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리.
내가 지금 이 헌책을 사려고 하고 있는것은 3만원
무료배송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야.


새 책인가? 헌 책인가 ?
저 높은 곳 헌책방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쇼핑백 메고
쌓여있는 헌책밑에서 만나는 매니아와 악수하며
그대로 책 사냥꾼이 된들 또 어떠리.

나 나나나~ 나나~

원곡의 작사/작곡/노래 양인자/김희갑/조용필
inspired from 잠본이님, Schultz님



크어어-구구절절이 가슴에 사무치는 명문 아닙니까! 특히 <내가 지금 이 헌책을 사려고 하고 있는것은 3만원 무료배송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야>에서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찌잉T∇T)b 정말이지 한정된 예산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어야 하는 헌책 사냥꾼들의 심정이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만치 절절하죠. 쌓여 있는 책더미 속에서 보물을 찾아냈을 때 그 하늘이라도 뚫을 듯한 희열이란...

이러구러하여 헌책방에서 산 추리소설 단편집들도 꽤 모였는데, 대부분 일어중역본에 대여점 스티커가 붙어 있지만 그래도 한 권 한 권이 제 보물입니다. 어쩌다 어머니나 동생이 제게 묻지도 않고 집에 온 손님에게 책을 빌려주면 거의 패닉에 빠져 울부짖으며 당장 찾아오라고 아우성을 쳐대죠^^;; 그런데 이거 정말 본인이 아니면 몰라요. 남들이야 비싸봤자 육칠천원 하는 책 갖고 뭐 그리 쪼잔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가방 짊어지고 닥치는 대로 헌책방들 뒤져 가면서, 밥값 아끼고 화장품도 샘플인생으로 연명하면서 구한 책들인데, 어디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나요. 그렇게 구한 책들을 서가에서 뽑아 손에 올려놓으면 피땀의 비린내까지 느껴질 정도인데.

아무튼 오늘도 책이 입고되었다는 소문을 들으면 지갑 끌어안고 헌책방으로 달려가는 분들, 배송료 3만원을 물지 않기 위해 피눈물을 머금고 그리 내키지 않는 책들까지 장바구니에 쓸어넣는 분들, 언젠가 좋은 날이 오면 동서추리문고 전권을 카드로 긁어버리리라 벼르고 계시는 분들, 모두모두 힘냅시다! 포와로님 말씀대로 고독한 애호가의 저미는 영혼을 알아주는 이 없으면 또 어떻습니까...어렵사리 구한 책을 손에 들고 펼칠 때면 그리 쉽게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데.
by 루리루리 | 2004/06/09 22:44 | 잡담 | 트랙백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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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시안 at 2004/06/09 23:03
가..가..강합니다!!! 정말이지 추리 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찡한 노랫가사(...) ^_^ 헤.. 대여점 스티커가 붙어있어도, 중역본이어도 어딥니까. 정말 멋진 보물들 가지고 계신 거에요. 정말 헌 책방에서 찾던 책이라도 갑자기 눈에 들어오거나 하면... 기쁩니다. ㅠ0ㅠ :D 자, 저도 동서추리문고 전권을 향해 힘내겠습니다아! 루리루리님도 힘내세요 (퍼억)
Commented by Starless at 2004/06/09 23:42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정말 불후의 명곡으로 꼽으며 좋아하는 곡이었습니다만 그 곡을 이렇게 개사할줄은, 헌책방사냥을 하고 다니는 건 아니지만 정말 심금을 울리는군요(...)

덧. 고려원 문고는 영웅문으로 돈벌어 추리소설로 날려버린 회사의 정열 <-- 개인적으로 이부분이 최강(....)
Commented by 가온누리 at 2004/06/10 01:05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따로 드릴 말이 없군요;
Commented by decca at 2004/06/10 01:11
이야.. 미니 미스터리.. 잠겨 있는 방.. 이미 부자시군요. 부러워라~
Commented by Leda at 2004/06/10 02:01
흔적 보고 찾아왔습니다. 심금을 울리는 가사지요, 정말.
루리루리님 말씀대로 언젠가 좋은 날이 올 때까지, 저도 힘내겠습니다! :)
Commented by 유즈 at 2004/06/10 11:03
잘 살아계시는군요. 건강하신듯 하니 기쁘네요.
가끔 놀러오겠습니다. ^^
Commented by poirot at 2004/06/10 12:12
'잠겨있는 방'과 '악성인자'는 제가 애타게 찾고있는 바로 그 책-_-) 살짜기 부러워지려고 합니다. 위에서 두번째 줄 맨 왼쪽에 있는 책은 무슨 책인가요?
Commented by 十五夜 at 2004/06/10 15:35
성격상의 문제인지 어렵게 손에 넣었으면 넣었을 수록...

손에 들어온 그 시점에서 멀리하게 되는...(...)

단지 '손에 넣었다.'라는 것에 너무나 큰 만족을 느껴버리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새걸 구하기 이전에 쌓아놓은 책들이나 좀 봐야겠는데...ㅠ.ㅠ
Commented by 펜릴 at 2004/06/10 18:28
헌책 구한들 어떠리, 새책 구한들 어떠하리, 책장의 저 책들처럼 뒤엉켜 읽을 수 있으면 다 좋은 거지요(뭐라는 거야;) 저도 옛날 책 같은거 용케 여기저기서 긁어서 구해놓고나면 막 뿌듯하고도 기쁜데, 정작 사놓으면 커버 씌워놓고는 읽지를 않지요;; 정녕...( -_)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6/10 21:47
시안님/ 크흑 그렇지요. 추리 애호가들의 주제가로 삼아 길이 기념해야 할 명곡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저도 예전에는 책 살 때 이것저것 깐깐하게 따졌는데, 한국에서 늦깎이 장르문학 팬으로 살아가려면 앞뒤 가리지 않는 터프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_-) 이제는 범인 이름에 동그라미만 쳐져 있지 않으면 됐지 하는 심정으로^^; 자, 언젠가 책꽂이 하나를 동서추리문고로 꽉 채울 그날을 위해! 힘내자구요>_<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6/10 21:52
Starless님/ 저도 예전부터 좋아했습니다만, 이렇게 보니 감동이 오십 배입니다T_T 그런데 전 이 노래 들으면 항상 <인어공주를 위하여>의 조종인이 자동 연상되어 버리더라구요^^;

그나저나 잘 나가던 고려원이 몰락한 이유 중 하나가 추리소설이었다니...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고려원 미스터리 문고들이 하나하나 눈물의 결정체로 보이는군요.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6/10 22:11
가온누리님/ 그렇지요, 이건 정말 먼지 날리는 헌책방 창고에서 한번쯤 우수를 씹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정서죠(끄덕끄덕).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6/10 22:17
decca님/ 아니아니 부끄럽습니다^^; 아직 한참 멀었는걸요. <잠겨 있는 방> 외에 다른 시리즈도 구하고 싶고...<미니 미스터리>는 크게 기대도 안 하고 갔다가 발견해서 어찌나 기쁘던지...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6/10 22:50
Leda님/ 안녕하세요 레다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하시는 책은 무사히 찾으셨어요? 알라딘에 보니 동림에서 나온 <비너스의 살인>이 아직 재고가 있는 것으로 나오네요. 아동용으로 분류되어 있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요, 꼭 언젠가 애호가들의 빈곤한 주머니에 볕들 날이 올 거예요. 루리루리는 지금도 심훈의 시처럼 그 날이 오면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거라고 믿으며 살고 있답니다=D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6/10 22:51
유즈님/ 꺄악, 유즈님! (덥썩) 어, 어떻게 아시고 와주셨어요? 정말 기뻐요>_< 요즘도 많이 바쁘신가봐요. 건강 조심하시고 자주자주 들러주세요♡♡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6/10 22:51
poirot님/ 헉 전에 인터넷 헌책방 뒤지다가 <악성인자> 발견했었는데...이미 갖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것만 주문하고 말았거든요. 그때 사둘 것을 잘못했네요. 포와로님께 드릴 수 있었다면 무진장 기뻤을 텐데.

위에서 두번째 줄 맨 왼쪽에 있는 책은 <악성인자>랑 같은 우담출판사에서 나온 <세계 서스펜스 명작여행>이에요. <미니 미스터리>와 비슷하게 짧은 단편들을 모아 놓은...반은 익히 알려진 것들이지만 반은 다른 앤솔로지에서 보지 못한 것들이라 꽤 흐뭇하더라구요^^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6/10 22:51
十五夜님/ 아 저도 그 기분 알아요. 대개는 어렵게 구하면 그 자리에서 읽는 편이지만, 어떨 때는 힘들게 구한 만큼 너무 아까워서 손가락도 못 대고 얌전히 보관만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읽어 버리면 찾아다니는 데 든 노력과 구했을 때의 희열이 너무 쉽게 사라지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하고...

저도 쌓여 있는 책들부터 읽어야 하는데,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찾아 헤매던 책이 어딘가의 헌책방에서 다른 사람 손에 팔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 조마조마해서^^;;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6/10 22:52
펜릴님/ 한때는 새책을 살 때에도 표지는 물론 속지까지 일일이 확인하며 접히거나 구겨진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고, 먼지라도 묻어 있으면 내려놓고 다른 서점에서 깨끗한 책을 사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은 헌책의 맛을 알아 버려서 웬만큼 더러워도 개의치 않게 되더라구요. 그렇게 이것저것 주워온 덕분에 지금은 서가의 절반이 대여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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