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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홈페이지의 대문으로 써먹었던 글입니다^^;)
폴 오스터의 디스토피아 소설 <폐허의 도시>에서, 주인공 안나 블룸은 그녀를 사랑해온 소꿉친구에게 자신이 처한 비극적인 상황을 알리고자 편지를 씁니다. ![]() 나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당신의 옛 친구 안나 블룸이다. 우리가 가려는 곳에 도착하면 그때 당신에게 다시 편지를 쓰도록 하겠다. 꼭 다시 쓸 것이다." 그 뒤 소설의 결말은 열린 채 미완으로 남습니다. 안나가 과연 오빠인 윌리엄을 찾았는지, 그 지옥과도 같은 도시에서 탈출할 수 있었는지, 과연 살아남기는 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편지의 수취인인 안나의 친구는 미지의 인물이며, 그가 과연 이 편지를 받았는지의 여부는 불분명합니다. 독자는 그가 언젠가 안나의 안타까운 처지를 알게 되길 바랄 뿐이죠. 그런데... 얼마 전 오스터의 다른 소설인 <달의 궁전>을 다시 읽다가, 충격적인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주인공 포그에게는 짐머라는 친구가 있죠. 그는 어려운 처지의 포그를 열성으로 도와 재기하도록 하는 좋은 친구입니다. 짐머는 안타까운 짝사랑을 하고 있었는데, 포그는 그 사연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 그렇습니다, 안나가 그토록 애절하게 부르던 '당신'은 포그의 친구인 짐머였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달의 궁전>을 통해 가슴 아픈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안나의 편지는 결국 짐머에게 도달하지 못했던 거죠. 짐머는 까닭도 모른 채 안나의 무심함을 원망했을 테고, 우리는 끝까지 그녀의 운명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세월이 흐른 후 포그가 짐머와 재회했을 때, 그는 평범한 여자와 결혼해 평범한 가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안나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거예요. (물론 다른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저는 일단 오스터가 그렇게 못박았다고 생각합니다) 가슴 아픈 일이에요. <폐허의 도시>를 보면서, 저는 어떻게든 그 '친구'가 안나의 치열한 운명에 대해 알아줬으면 했거든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녀가 원한 대로 된 건지도 모르겠네요. 적어도 짐머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의 삶을 지켜나갈 수 있었으니까요. 당신은 분명 내 글을 읽고 놀랄 것이다. 그러다가 온갖 걱정과 근심에 빠져 나와 똑같은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제발 그렇게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제발. 나는 당신을 잘 안다. 그래서 당신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도 안다. 당신에게 나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아직 남아 있다면 제발 내가 빠진 함정에 당신도 빠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당신에 대한 걱정 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 당신이 이곳 거리를 헤매고 다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이 오질 않는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만 길을 잃은 것으로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당신은 당신이 지금 있는 곳에 있으면서 계속 내 마음속에 나를 위한 당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나는 이곳에 있고, 당신은 그곳에 있으면 된다. -폴 오스터, <폐허의 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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