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녘 맹수들의 싸움> - 앙리 프레데릭 블랑

여기 엘리베이터에 갇힌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샤를르 퀴블리에, 나이는 서른세 살, 직업은 <종합 광고 기획 전문가>이며 그 방면에서는 높은 평판을 얻고 있는 인물입니다. 입가에 성공의 아우라와도 같은 미소를 머금고 빠르게 회전하는 머리를 십분 활용하여 자본주의의 피라미드를 한 칸 한 칸 올라가던 이 사내의 운명은 우연히 타게 된 어느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예측을 불허하는 방향으로 전복되고 맙니다. 낡은 엘리베이터가 느닷없이 허공에 정지하는 순간 샤를르는 그것을 일상에 생긴 작은 균열쯤으로 받아들이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구원의 손길은 다가오지 않고, 외려 집주인이 남의 집 엘리베이터 안에서 시끄럽게 굴지 말라고 타박하는 지경에 이르자 무언가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집주인인 발메르 부인은 여왕처럼 당당한 태도로 샤를르에게 퉁을 놓으면서도 그를 내보내줄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더니, 마침내 식량과 변기를 엘리베이터 안에 넣어주면서 잘 살아보라고 냉소적인 격려를 던지기까지 합니다. 그뿐입니까.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샤를르의 절규와 몸부림에 무심할 뿐 아니라, 나중에는 그를 이 아파트의 별난 명물쯤으로 치부하며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몰려들어 간식을 던져주고, 경찰이나 집배원에게 매달려 보아도 다들 코끝으로 웃으면서 외면할 따름입니다. 마침내 반질반질 윤나게 닦여 있던 샤를르의 자존심은 맥없이 무너져 버리고, 그는 허공에 떠 있는 관 속에서 오만 망상과 불안의 포로가 되어 점차 붕괴되어 갑니다.

도대체 이 남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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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말부터 몇몇 젊은 프랑스 작가들의 소설이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했습니다. 미셸 투르니에, 르 클레지오, 파트릭 모디아노 등 프랑스 문단에서 지위를 공고히 한 기성 작가들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거죠. 선봉에서 맹활약한 출판사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덕분에 이미 한몫 톡톡히 본 열린책들이었습니다. 베르베르 만큼은 아니어도 한국에서 웬만큼 고정 독자를 확보한 듯이 보이는 작가 아멜리 노통, <스키 캠프에서 생긴 일>(<겨울 아이>라는 제목으로 하드커버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콧수염>으로 좋은 평을 받은 엠마뉘엘 카레르, <암퇘지>로 한국의 문을 두들긴 마리 다리외세크...이들의 공통점은 부조리한 상황에 부대끼는 개인을 재지가 듬뿍 담긴 문장으로 묘사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콧수염>의 주인공은 아내를 놀려주기 위해 오랫동안 고수해온 콧수염을 박박 밀어버리지만, 아무도 그에게 콧수염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나중에는 다들 혼란에 빠진 주인공을 미친 놈 취급하기까지 하죠. 그 외에도 남편의 갑작스러운 실종으로 점차 혼돈에 잠식되어가는 <유령들의 탄생>의 주인공, 날마다 찾아오는 이웃의 말없는 방문으로 일상의 평온함을 상실하는 <두려움과 떨림>의 노부부, 어느 날 갑자기 돼지로 변해버리는 <암퇘지>의 화장품점 여직원 등, 마치 이오네스코와 카프카의 교배로 태어난 세계에 내팽개쳐진 것만 같은 이 주인공들은 현대 프랑스 문단의 시류가 새로운(정확히 말하자면 몇 가지 지나간 유행을 구미에 맞게 변형시킨) 방향으로 이물을 틀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설정된 희생양들입니다. 다들 누보 로망과 장르 소설과 기존의 서사 문학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해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일상의 꼭지를 비트는 것만으로 한 권을 빽빽히 채워낼 수 있다니 확실히 기본기가 잘 되어 있는 프랑스 작가들 답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바꾸어 말하자면 나올만한 얘기는 이제 다 나왔다는 뜻이 되기도 하지만요.

이 소설, <저물녘 맹수들의 싸움>의 작가 앙리 프레데릭 블랑 역시 그러한 시류의 주동자들 중 한 명입니다. 사실 나이로만 치면 그렇게 젊은 작가도 아니에요. 54년생이니까요. 그렇지만 15년간 출판사들로부터 거절만 당하다가 89년에야 비로소 출판을 했으니 데뷔 시기로만 보면 다른 작가들과 같은 열에 세워놓는대도 별반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15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에 종지부를 찍어준 그의 데뷔작 <잠의 제국>은 국내에도 출판되어 있으며,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저물녘...>에 비해 꽤 호평을 얻고 있는 모양이에요. 저도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주위의 이불인간들이 이 책을 무척 좋아하더군요(웃음). 언뜻 프랑스판 <오블로모프>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은가 봅니다.

여하간에...

<저물녘 맹수들의 싸움>의 주인공 샤를르 퀴블리에는 위에서 언급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상식 밖의 함정에 빠져 변변히 항거도 해보지 못하고 파괴됩니다. 그는 호소하고 몸부림치고 격분하고 협박하고 발광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해 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주위 사람들의 냉담한 조소뿐입니다. 사실 이 소설의 구도는 부조리물의 도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전개 과정부터 결말까지 얼마간 또렷하게 눈에 보입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내가 모르는 힘이 작용하여 나를 파멸로 몰아넣는데,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거기에 동참하고 있다는 거죠. 저항해도 소용없고 체념해도 소용없으니 미치거나 죽는 것밖에 방법이 더 있겠어요. 실제로 앞서 예시한 소설들의 전개 방식도 비슷비슷했고요.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는 독자는 주인공의 기구한 운명에 당혹감을 느끼는 한편으로 마음 깊이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나--주인공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더욱 낙담하겠지만--독자 역시 "이거야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군."하고 한숨을 내쉬면서도 은근히 주인공의 불행을 뒤에서 부채질하며, 상황이 더더욱 극단적으로 치달아서 주인공이 더더욱 극단적인 파멸 속으로 잠겨들기를 바라게 됩니다. 그리고 결말이 원하던 대로 났을 때에는 일종의 가학적인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되는 거죠. 작가도 그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상황을 이리저리 조물락거려서 조금이라도 더 독자를 자극하도록 만들고자 합니다. 정말 죽겠군...내가 왜 이렇게 된 거야...아냐 이건 현실이 아닐 거야...잠깐만, 어디선가 구원의 소리가 들리는데...이제 살았다!...빌어먹을...오히려 점점 더 나빠지는군...포기하자...이젠 끝이야...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종장이 오기 전까지 <저물녘...>은 이 도식에 충실했고 블랙 유머에 가까운 센스로 상황과 주인공의 마음 속 진창을 들쑤시면서 빠르게 전진했습니다. 이제 독자는 결말을 눈으로 확인할 일만 남겨둔 상태에서 두근거리며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긴장시키게 됩니다. 자, 어떻게 될까? 주인공은 아마 죽을 거야...그냥 미쳐버릴 지도 모르고...하지만 그건 너무 뻔하잖아...이 지긋지긋한 엘리베이터에서 어떻게 구출될까? 구출되기나 할까? 쿵짝쿵짝, 그리고 결말. 무진장 빠릅니다. 제가 이 소설을 펼쳐든 것이 구로에서 직통을 탄 직후였는데, 15분 뒤 송내역에서 내릴 때쯤에는 이미 마지막 장을 읽고 있었으니까요. 그 사이에 주인공은 순교자처럼 삼주간의 고행을 겪고 최후의 심판을 맞이했습니다. 최후의 심판이라, 그 말이 딱이군요. 주인공은 정말 심판대에 놓인 꼴이 되고 마니까요.

바로 그 부분에서 이 작품은 모든 것을 망쳐 버렸습니다. 그때까지 상황의 변화를 주시하고 있던 독자는 갑자기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아니, 이 모든 지랄 발광이 결국 심판을 위해서였다니? 물론 그게 그리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나름대로는 시니컬하고자 했을 법한 결말을 암시로 포장하려 애쓴 흔적이 보이거든요. 하지만 작가는 피가 철철 흘러 넘치는 부조리극에 무리해서 설명을 집어넣으려고 했고, 그 결과 이 작품은 설득력을 결여한 코미디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설득력이라는 것은 인과에 따른 당위나 논리적인 개연성과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부조리를 부조리 자체로 이해하게끔 만드는 힘을 뜻하는 거죠. 그러한 힘이 있다면 사람들이 갑자기 무소가 되어 질주하건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건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벌레가 되건 간에 읽는 사람이 나름대로의 독법으로 수십 수백 가지의 해설을 풀어놓을 수 있습니다. 허나 그게 없다면 파괴된 상식의 잔해 속에서 작가의 주둥아리가 툭 튀어나오는 꼴이니 그 이상 허무할 수가 없지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빈틈은 독자를 위해 주어지는 공간인데, 거기에 구태여 해설을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 작품은 부조리극으로서의 의미를 완전히 상실한 거예요.

<저물녘...>은 애초부터 시도 자체가 그리 신선한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종장에 이르기까지의 전개 방식은 꽤 재미있고 속도감도 있었어요. 결말부의 처리가 좀더 신중했다면 제법 좋은 작품이 되었을 법한데, '...했다면...'이라는 단서가 붙는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결국 김 빠진 사이다 꼴이 되고 말았네요. 기대를 가지고 본 만큼 더욱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이 현대판 부조리극들 중의 대부분이 한시적인 유행이 되어 사라질 거라는 예감이 들긴 하지만요.
by 루리루리 | 2004/06/06 22:04 |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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