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판본 탐방기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날이면 날마다 있는 게 아닌 루리루리의 도서 구매기입니다. 사진을 보고 어째 이번에는 양이 적은데...라고 생각하시는 거기 그 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 탐방의 컨셉은 '절판본 구하기'였기 때문에, 위에 있는 책들은 동인천부터 영등포까지 1호선 역 근처에 있는 아홉 개의 대형서점들을 뒤져서 구입한 따끈따끈한 '새책'들입니다. 여느 때처럼 헌책방에 주문한 책들은 이틀 뒤에나 가져올 예정이므로 그때 봐서 따로 글을 올리겠습니다(아,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다구요. 그렇습니까).

아무튼 느닷없이 절판본 탐방을 떠나게 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이렇게 자꾸 헌책만 사다 보면 시중에 남아 있는 좋은 책들이 완전히 사라져서 찾느라고 난리를 치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웠다는 것과, 둘째로는 요즘 다니엘 페낙의 말로센 시리즈에 푹 빠져 있는데, 책세상에서 나온 <말로센 말로센>의 전편인 <산문 파는 소녀>가 아직 시내의 대형 서점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1년 전 정보를 입수하여 직접 찾아나서기로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제 오늘 이틀에 걸쳐 동인천 대한서림, 그 옆에 있는-이름을 까먹은 서점, 부평 한겨레문고, 부평문고, 싱크빅문고, 송내 투나북스, 부천 교보문고, 구로 리브로, 영등포 GS문고에 이르기까지 총 아홉 개 서점들의 문학 코너를 이 잡듯이 샅샅이 뒤졌습니다. 결국 목표로 했던 <산문 파는 소녀>는 구하지 못했지만(혹시 이 책 파는 서점 있으면 알려 주세요. 후사하겠음) 그 구하기 힘들다는 까렐 차뻭의 소설 세 권과 아베 고보의 단편집 <벽>, 슈테판 츠바이크의 <체스>,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벵갈의 밤>을 입수했으니 아주 헛짓은 아니었다고 기뻐하는 중입니다. 참고로 맨 위의 민음사 책들은 집에 있는 세계문학전집의 빈칸을 채울 겸, 페낙의 책을 못 구해 허탈한 마음을 달래려고...조반니노 과레스끼의 신부님 시리즈 3권인 <신부님 힘 내세요>는 그렇지 않아도 1, 2권밖에 없어 아쉽던 참에 부천 교보에서 50% 세일을 하길래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덜컥...<말로센 말로센>의 후속작인 <정열의 열매들>은 전편 <산문 파는 소녀>를 못 구했으니 뒷권이라도 우선 보자 하는 심정으로...전혜린의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는 산다산다 말만 하고 몇 년째 미루던 참이라 싸게 나온 김에...

제일 심봤다 싶은 것은 누가 뭐래도 아베 고보의 <벽>. 읽고 싶었던 '벽-S. 카르마 씨의 범죄'(모 게임의 악덕검사와는 관계 없음)를 비롯하여 일본의 카프카(해변의 카프카 아님)라 불리는 아베 특유의 찌릿찌릿한 단편들이 여섯 개나 들어 있어 무진장 기쁩니다. 그러고 보면 좋아하는 일본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으면서도 이 사람의 소설은 <모래의 여자>와 <불타버린 지도>밖에는 읽은 것이 없군요. 하기야 국내에 출간된 것도 거의 없긴 하지만...

지금은 <호르두발>과 <벵갈의 밤>을 슬쩍슬쩍 넘기다가 <정열의 열매들>에 안착해서 열독 중인데, 말로센 시리즈답게 아주 재미있습니다. 친숙한 인물들이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오니 굉장히 즐겁네요. 다 읽는 대로 <말로센 말로센>과 함께 감상을 써 올리겠습니다. 간만에 적극 추천하는 소설.

그럼 루리루리는 이만 책을 읽으러 & 원고를 하러 사라지겠습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

덧 : 문학 코너에 서서 절판된 책들 찾는 거,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일이더라구요. 점원에게 부탁하거나 PC를 이용하면 금세 재고 유무를 알 수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대충 넘어가면 구석에 있는 보물을 놓칠 수 있거든요. 그러니 책장 앞에 서서 한권 한권 일일이 훑다 보면 나중에는 등줄기에 땀이 배고 어깨도 욱신욱신. 하긴 그렇게 해서 다이아몬드를 찾았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지만요^^;(중독이에요 중독)

덧 2 : 부평 한겨레문고에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 전권이 있더군요. Peter Brook의 연극판 <마하바라타>도 있던데, 이거 개인적으로도 추천하는 책이랍니다. 한국에서는 완역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봐도 좋을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를 현대적인 언어로 심플하면서도 긴박감 있게 개작한 작품이죠. 루리루리는 일본에서 나온 완역판을 갖고 있는데, 이걸로 볼 때는 그냥 그랬던 장면이 브룩의 축약본으로 보면 오히려 소름이 쫙 끼칠 정도로 멋있어서 좋아합니다. 혹시 원하시는 분 계시면 대리 구매해 드리겠습니다. 가격은 15,000원.

덧 3 : 잠시 바닥에 <정열의 열매들>을 내려놓고 씻으러 갔는데, 돌아오니 강아지들이...강아지들이...표지를...

...너무 참혹해서 생략하겠습니다. 크허헝.
by 루리루리 | 2004/05/25 19:20 |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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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다인 at 2004/05/25 19:26
책에 명복을. 링크 했습니다.
Commented by Rimi at 2004/05/25 22:08
루리루리님...번거로우시겠지만 그 일본 완역판 <마하바라타>의 출판사 및 번역자 이름...혹은 isbn번호 같은 거좀 알려주실 수 없을까요? ^^; 기노쿠니야를 통해 검색해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제가 본 것은 완역된 게 아니라 아직 출간중에 있는 문고본으로 보였거든요...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마하바라타는 전18편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문고본은 9권까지였나 그랬습니다. 물론 적은 권수로 압축해서 출간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Commented by Tarazed at 2004/05/26 00:45
안녕하세요 루리루리님. 사실은 예전부터 루리루리님을 흠모하여 스토킹만 하던 차에; 말로센 시리즈 이야기를 읽고 반가워서 그만 흔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넙죽) 저도 작년쯤 친구 추천으로 페낙을 접하고 대감격해서, 시리즈 찾아 삼만리를 하긴 했는데 주위에서 호응을 안 해 줘서리...외로웠어요;_;. [산문 파는 소녀]는 여간해선 구하기 힘들 거에요. 저는 동네 도서관에서 겨우 구해보긴 했는데... 사랑하는 티앙 영감 - 그러니까 제르베즈의 아빠 - 과 베르덩 페어 및 자보 여왕님의 역사가 잔뜩 등장했던지라 줄줄 울면서 읽었습니다.T T 한국판을 구하는 것은 결국 포기하고, 엄하게 불어판 [산문 파는 소녀]와 전작 [기병총 요정]을 확보해서 책장에 쟁여놓긴 했는데 진도는 아직까지 2p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는...-_-;;
본문으로 돌아와서; 저 엄청난 여정에 찬사를 보냅니다. 글 즐겁게 읽고 있어요.^^
Commented by 사이암 at 2004/05/26 10:50
저요. ;ㅁ;)// 대리구매 부탁해요. 루리님 설명을 보니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그러잖아도 마하바라타는 어린 시절 동화책 판본으로만 대충 접해봐서 아스트랄하던 중이었거든요.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5/26 22:50
다인님/ 링크 감사합니다^^ 댁에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으햐 굉장한 고수이시군요. 이런 누추한 곳에 들러 주시다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정열의 열매들>은 결국 스카치 테이프로 몸을 덕지덕지 휘감고 부활했답니다. 강아지들은 엉덩이를 세 대씩 맞고 쫓겨나 당분간은 서재 접근 금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가끔 있는 일이라 이제는 그러려니 하지만 누더기가 된 표지를 볼 때마다 역시 슬픕니다...TㅁT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5/26 23:07
Rimi님/ 사실은 루리루리가 구입한 <마하바라타> 역시 완역이라고는 해도 아직 7권까지로, 18권까지 계속 출간 예정이라지만 여태 신간 소식이 없어 혹시 중단된 건 아닌가 걱정이에요. 저언혀 팔릴 것 같지 않은 책이니...그래도 일단은 '예정'이라니까 이거라도 좋으시다면...

책은 ちくま學芸文庫에서 나온 <原典譯 マハ-バ-ラタ>로, 저자는 힌두교 관련 저서를 많이 내놓은 도쿄대학의 上村勝彦 교수입니다. ISBN은 4480086013, 4480086021,448008603X, 4480086048, 4480086056, 4480086064, 4480086072. Rimi님께서 말씀하신 9권짜리 마하바라타는 혹시 三一書房에서 나온 山際素男의 편역본이 아닌가 싶습니다만...아, 그런데 이건 절판이니 역시 카미무라 카츠히코의 책을 보신 걸까나요. 완결도 안 되었는데 기대를 갖게 해 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5/26 23:21
Tarazed님/ 흐갹 놀래라, 우드노트의 제드님 아니십니까! 어서어서 오세요. 이런 곳에서 뵙게 되다니 감동이옵니다>ㅅ< 더구나 말로센 일족의 팬이셨다니...루리루리 기쁩니다! 저도 요새 바지런히 팬을 늘리고 있는 중인데 호응이 별로 없어 외로운 참이었거든요. <산문 파는 소녀>를 읽으셨다니 부러워요. <말로센 말로센>의 수녀 경찰 제르베즈에게 홀딱 반해서 그녀의 아버지인 티앙 영감에 대한 호기심이 마구 증폭하는 터라...거기다 베르덩 페어의 탄생사와 자보 여왕님의 역사까지...꺄아악;;(생각만으로 벌써 죽어 있음)

<정열의 열매들> 역자 김운비 씨도 한국에서 페낙의 인지도가 낮은 것을 못내 아쉬워하던데, 문학동네가 마음을 예쁘게 먹어서 잘 안 팔리더라도 앞권들을 내놓을 가능성은 정녕 없는 것일까요...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같은 책들도 재출간되는 판국인데...

아, 아무튼...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드님의 덧글을 보게 되다니 무척 행복한 밤이네요^____^
Commented by Rimi at 2004/05/26 23:22
제가 알아보았던 것은 역시 카미무라상의 책이었습니다. 제가
다시 한번 찾아보고 물어봤어야 하는 건데 괜한 수고를 끼쳐드린
듯 하여 죄송합니다..^^;
그리고 매우 아쉬운 사실을 알게 되어 덧붙이자면..저자인 카미무라 교수는 작년에 돌아가셨다고 하는군요. 뒷권이 나오지 않는
건 아무래도 그 이유겠고, 앞으로도 기약 없지 않나 싶습니다.
고인께 명복을..(묵념)
기노쿠니야 검색 사이트에서 2003年、逝去 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전문을 옮기려고 했지만 깨지길래;;)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5/26 23:24
샴언니/ 와, 언니가 브룩의 <마하바라타>를 읽어 주신다면 루리루리로서도 기쁜 일이 될 거예요. 한국에서는 마이너 중에서도 초초초 마이너라 버닝하면서도 엄청 쓸쓸했거든요. 내일 당장 사서 부칠게요. 돈은 나중에 천천히 보내 주세요^^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4/05/26 23:28
Rimi님/ 우게게게게게게겍?!?! 돌아가셨단 말입니까?? 아아, 어찌하여...아직 쿠루크셰트라의 대전투가 채 반도 진행되지 않았는데...(비틀비틀) 이래서야 영문판을 구하든 산스크리트어를 직접 배우든 하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엉엉.

아무튼 돌아가셨다니 무척 안타까운 소식이네요. 일본 인도학계의 거장이셨는데...부디 비슈누신의 천국으로 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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