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카르멘>
우엥...5월 한 달은 하루도 빼먹지 않고 글을 올리겠다 결심했건만, 엊그제 잠실에서 공연을 본 뒤 찜질방에서 자고 오느라고 그만 뜻을 꺾고 말았습니다. 문제의 찜질방에는 요즘 흔한 인터넷 PC 한 대 없고 온통 다이내믹하기 그지없는 코골이로 지축을 뒤흔드는 만취한 아저씨들뿐이어서...덕분에 덜컥 감기를 얻어 뇌리가 티미한 까닭에 감상문이 조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릴게요~

1.

메리메의 소설 <카르멘>을 처음 읽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10년 전. 뜅뜅한 여드름쟁이 중학생이었던 루리루리는 당시 학원출판사인지 어딘지의 세계문학전집 중 한 권인 <갈멘>과 운명적인 첫만남을 갖게 됩니다. 일본어 중역 냄새가 풀풀 풍기는, 도대체 의미가 뭔지조차 알 수 없었던 제목이었지만, 그래도 비제의 <카르멘>을 귀담아 들은 풍월은 있어 혹시 그것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뽑아 들었고 아니나다를까 역시 그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사실 운명적인 만남이라고는 했지만 메리메의 원작 소설은 임팩트가 크지 않아요. 오페라 덕분에 '카르멘'하면 화려하고 정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 쉬운데, 소설은 자못 메리메답게 고풍스럽고 얼마간 음습하기까지 합니다. 거기다가 진지한 상황에서 자꾸 "갈멘-! 갈멘-!"해대니 이거야 웃겨서 원...(아무리 일본어 중역이래도 Carmen이라는 이름 정도는 상식 선에서 숙지해야 할 것 아냐!)

그 뒤 본격적으로 오페라에 빠지게 되면서 비제의 <카르멘>은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와 더불어 루리루리에게 있어 최고의 오페라가 되었고, 원작을 읽었을 때 느낀 찝찌름한 뒷맛은 경쾌한 하바네라의 선율에 눌려 깨끗이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메리메의 명예를 위해 덧붙이건대, 단편 작가로서의 그는 상당히 뛰어난 사람입니다. 특히 어린 시절 '비너스의 살인'을 읽은 뒤로는 한동안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은 모든 조각상을 증오하기까지 했지요^^;) 하이라이트가 아닌 전곡 CD로 몇 번을 돌려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진정 걸출한 명작이에요. 낭비가 없고 아름다우며 박력이 넘칩니다. 합창이든 중창이든 아리아든 어느 하나 버릴 곡이 없습니다. 프랑스는 이탈리아의 베르디, 푸치니와 독일의 바그너 같은 거장들에게 눌려 오페라에 한해서는 2% 부족한 나라로 불렸지만, 비제와 <카르멘>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가뜩이나 빳빳한 목줄기에 더 힘을 주어도 괜찮으리라 생각합니다.

첨언하자면 비제는 <카르멘>의 초연 이후 3개월만에 죽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만한 걸작을 남겼으니 걍 죽는 것밖에 더 할 일이 없었을 것 같아요. 절대 '죽어서 잘 됐다'는 뜻은 아니지만, 가끔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여 두 번 다시 태어나지 않을 역작을 뱉어놓고 산화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진주잡이>나 <아를르의 여인>에서도 작곡가 비제의 출중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지만, 어느 것이든 <카르멘>에는 감히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른바 '굵고 짧게'라는 건데, 이 정도로 화끈하게 불사르고 떠날 수 있다면 지구보다 무거운 목숨값도 별로 아깝지 않을 것 같습니다.

2.

아시다시피 <카르멘>은 사랑과 집착, 배신과 복수의 이야기입니다. 주최측에서 내세운 광고 문구인 "죽을 만큼 위험해야 사랑이다"는 좀 웃기긴 해도 작품의 주제와 크게 동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믿음 깊은 어머니와 예쁘고 착한 약혼녀를 둔 하사관 돈 호세는 담배 공장에서 일하는 집시 여인 카르멘의 유혹에 빠져 탈영합니다. 변덕스러운 카르멘을 잃지 않기 위해 밀수업자로 전락한 호세 앞에 어느 날 약혼녀 미카엘라가 나타납니다. 호세는 그녀로부터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 사이 카르멘은 죽 그녀에게 구애해 오던 투우사 에스카미요에게 넘어가 호세를 버리고, 돌아온 호세는 복수심에 불타 옛 연인을 위협합니다. 그러나 카르멘은 아무도 자신을 구속할 수 없다며 매몰차게 그를 박대하고, 결국 호세는 돌아서는 그녀를 단도로 찔러 살해합니다. 몰려드는 사람들 앞에서 절망한 호세가 "내가 그녀를 죽였소! 날 체포하시오!"라고 부르짖는 것으로 막이 내립니다.

오페라는 메리메의 소설과는 상당히 다르게 각색되었습니다. 원작은 카르멘을 죽인 뒤 사형수 감방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호세를 1인칭 화자가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청초한 미카엘라는 아예 등장하지 않으며 오페라 속의 그녀는 "돈 호세는 바스크족 여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지니고 있다"는 메리메의 소설 한 구절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카르멘이 지금과 같이 영원한 요부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유능한 대본 작가들 덕분인데, 불필요한 부분들이 사라짐으로써 이야기는 운명적인 연인들의 팽팽한 긴장 구도로 압축되었고, 그 결과 그들의 이름은 놀라운 생명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절정에서도 복수의 순간 못지 않은 긴장감으로 대립하는 카르멘과 돈 호세는 전적으로 노래를 부르기 위해 태어난 주인공들입니다. 누가 하바네라를, 세기디야를 부르며 몸과 마음으로 부딪쳐 오는 카르멘을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난 그대를 사랑해. 한번 내 사랑을 받게 되면 조심해야 할 거야!"라고 외치며 춤추는 그녀를 볼 때 관객은 돈 호세가 되어 달콤한 파멸의 예감 속에서 침을 삼키게 됩니다. 카르멘의 손을 떠난 꽃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운명의 무게를 느끼며 전율하는 것은 호세뿐 아니라 그녀를 사랑하게 된 모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카르멘은 왜 그렇게 호세를 극단까지 몰아붙여야 했을까요? 저는 사실 그녀가 호세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카르멘은 단순하지만 영리한 여자예요. 호세를 따돌리려고 마음먹었으면 얼마든지 다른 방법을 쓸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시작한 사랑을 자신의 손으로 끝내기로 결심했고,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달아나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호세가 무릎을 꿇고 그녀의 마음을 되돌리려 애걸할 때 카르멘이 "난 굴복하지 않아!"라고 외치는 장면입니다. 물론 프랑스어니까 '굴복'이 맞는 번역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상황을 볼 때 그리 어울리지 않는 단어 아닙니까? 뒤이어 카르멘은 "난 자유야! 자유라고!"라며 거듭 강조하는데, 1막의 여유로운 모습과는 달리 그녀 역시도 호세 못지 않게 굉장히 절박해 보입니다. 단순히 생명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라, 호세 뒤에 있는 무언가에게 온몸으로 저항하는 듯한 태도.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요?

카르멘은 세간의 시각처럼 그렇게 얄팍한 바람둥이가 아닙니다. 주니가 중위나 에스카미요처럼 부와 명예를 소유한 남자들의 구애조차 단호하게 거절하며 호세를 기다린 카르멘은 말 그대로 조건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를 위해 사랑하는 여인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이 식었을 때도 여신(餘燼)을 다시 사르기 위해 헛되이 노력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호세의 모든 것을 빼앗고 그를 파멸시켰지만 그것은 어떤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랑 앞에서 무모해지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호세는 카르멘이 모든 것을 송두리째 내보이며 다가오는데도 현실적인 문제들에 얽매여 주저합니다. 그리고 과거를 버린 뒤에는 그 사실에 연연하며 집착으로 카르멘을 위협하지요. '내가 모든 것을 버렸으므로 너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호세의 태도는 카르멘을 몸서리치게 만듭니다. 그녀는 오직 자유, 자유를 위해 살아가는 여인이었으므로 타인의 사랑은 물론 자기 자신의 사랑에도 얽매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자유를 잃는다는 것은 존재 자체를 상실하는 것이고, 그것은 카르멘에게 있어 육체적인 종말보다 두려운 일이었으니까요. 따라서 그녀는 호세가 매달릴 때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려 '굴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카르멘에게 영원히 한 사람의 연인으로 남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때문에 '나는 자유롭다'는 말은 그녀가 자신에게 뇌까린 주문인지도 모릅니다. 3막에서 카드점을 통해 언젠가 호세에게 살해되리라는 사실을 예감한 카르멘은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겠다고 외칩니다. 그리고 그 말대로 단도를 품고 군중 속에 서 있는 호세를 발견한 카르멘은 당당한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갑니다. 결국 호세에게 카르멘이 운명이었던 것처럼 카르멘에게 있어서도 호세는 운명이었던 거지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단순한 치정극 이상의 호소력을 품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까닭에서입니다. 볼프강 빌라쉐크의 표현을 빌자면 금기를 깨는 사람은 호세가 아니라 카르멘입니다. 그녀는 자유의 한계를 넘어 한 남자에게 몰두하고, 그 대가로 목숨을 내놓게 됩니다. 운명적인 비애감이 그들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밧줄에 묶인 카르멘이 호세를 유혹할 때 그 장면이 최후의 순간보다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것 역시 처음부터 불가피한 운명이 둘 사이에 개입했기 때문입니다. 카르멘은 어떤 파국의 예감으로 호세에게 접근합니다. 그가 자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이별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도망치지 않고 천천히 그의 칼 앞으로 걸어가, 마지막까지 스스로에게 충실함으로써 오만한 운명에게 복수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시공을 초월하여 불멸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3.

이번 <카르멘> 야외 공연에 대해 평가하자면, 내적인 면에서는 94점, 외적인 면에서는 20점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연 두 사람을 비롯한 출연진들의 노래와 열의는 대단했습니다. 15일자 공연을 본 기자들의 평에 의하면 돈 호세 역의 호세 쿠라(^^)는 연기는 좀 미흡해도 노래가 무척 좋았고, 카르멘 역의 엘레나 자렘바는 노래는 기대에 못 미쳤지만 연기는 노련했다고 하는데, 제가 본 18일자 공연에서는 두 사람 모두 노래나 연기나 기대했던 이상으로 훌륭했습니다. 사실 엘레나 자렘바는 초반에는 약간 미흡하다 싶었어요. 모든 사람이 숨죽여 기다렸던 하바네라는 풍부한 성량으로 아름답기는 했지만 호세와 뭇 남성들의 가슴에 화살을 꽂은 섬뜩할 정도의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차차 감을 잡았는지 고조되기 시작해서 세기디야를 부를 때쯤에는 원래의 페이스를 완전히 되찾은 듯했고, 이후 그 기세를 4막까지 밀고 나갔습니다. 약간 쉰 느낌의 섹시한 목소리가 그야말로 카르멘이다 싶더군요. 폐부에서부터 터져 나와 일순간에 좌중을 휘어잡는 그녀의 노래는 그야말로 이번 공연의 백미였다 할 수 있겠습니다.

호세 쿠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컨디션을 유지했는데, 호소력 강하고 피끓는 듯한 음색이 떠나 버린 사랑을 붙잡으려 애쓰는 호세의 이미지에 잘 어울렸습니다. 특히 4막에서 카르멘을 찔러 죽이고 입술을 파르르 경련하며 우두커니 서 있는 부분의 연기가 일품이었어요. 질투를 폭발시켜 당신은 내게서 도망칠 수 없다고 외치는 3막이나, 냉담한 카르멘 앞에서 '꽃의 아리아'를 부르며 사랑을 고백하는 2막 모두 훌륭한 호세의 모습이었습니다. 제 취향에 맞는 스핀토(찌르는 듯한) 드라마티코 테너였는데, 기회가 되면 그의 오델로를 꼭 한번 보고 싶군요.

재미있는 것은 자기가 맡은 캐릭터에 대한 쿠라의 해석입니다. 그는 "<카르멘>의 돈 호세를 어떻게 해석합니까."라는 동아일보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하면 실망하실 분도 있겠군요. 그는 낭만적인 남자가 아니라 살인자고 정신병자입니다. 사랑 때문에 카르멘을 죽인 것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그에게 모욕을 주었기 때문에 카르멘을 죽인 것입니다.”

그 때문인지 쿠라의 돈 호세는 얼마간 어둡고 광기 어린 성격의 주인공입니다. 본래 카르멘에게 구애하던 주니가 중위는 밀수업자들의 서슬을 피해 달아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번 공연에서 그는 질투에 불탄 호세의 칼에 찔려 죽습니다. 4막에서 카르멘이 호세가 준 반지를 뽑아 던지는 장면의 연출도 약간 달라요. 제가 예전 DVD로 본 공연에서는 반지를 내팽개친 카르멘이 돌아서는 장면과 호세가 그녀를 찔러 죽이는 장면 사이에 망설이듯 약간의 간극이 있거든요. 주위에 구경꾼도 전혀 없는 것으로 되어 있었고요.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는 가운데 모욕을 당한 호세가 분을 참지 못해 곧바로 달려들어 카르멘을 찌르는 것으로 나오더라고요. 꽤 신선하기도 하고, 카르멘의 배반을 정당화시켜주는 해석이기도 하지만, 이래서야 호세가 좀 불쌍하네요^^; 이것저것 다 잃고 여자에게 채이고 결국 미친놈 취급받으면서 죽게 되다니.

마야 다스훅은 금발을 한 갈래로 예쁘게 땋은 청초한 외양이 미카엘라 역에 딱이었고, 노래도 좋았습니다. 신심 깊은 선량한 소녀의 목소리 그 자체였어요. 그러나 뒤로 갈수록 몰아치는 강풍에 눌려 노래가 약하게 들렸다는 것이 흠입니다. (어째서인지 커튼콜 때 가장 열렬한 환호를 받은 사람이었지요^^;)

에스카미요 역의 프랑코 페라리도 아주 좋았습니다. 저 정도면 카르멘이 넘어갈 만하군 싶을 정도로 박진감이 넘쳤고 씩씩했어요. 특히 저 뛰어난 명곡 '투우사의 노래'는 소름이 오싹 끼칠 정도로 멋있었습니다. 에스카미요라는 인간 자체는 능글능글해서 질색하는 타입이지만, 눈앞에서 보니 확실히 매력적인 사내더군요. 뒤로 갈수록 그의 호쾌함과 호세의 음침함이 뚜렷이 대비되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럼 이제 외적인 부분을 헐뜯어 볼까요. 사실 루리루리는 야외 오페라라는 기획을 매우 싫어합니다. 지난번 <투란도트> 공연 때 큰맘 먹고 갔다가 엄청난 상처를 입어 버려서 두 번 다시 야외 오페라 따위는 보지 않으리라 맹세한 처지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다>나 <라 보엠> 등 후속 기획들이 지지부진하게 끝났단 얘기를 들어도 가슴이 아프기보다 당연한 일이지 싶었거든요. 하지만 이번 공연은 다른 무엇도 아닌 <카르멘>이고, 거기다(실은 이게 결정적이었습니다만) 초대권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부실해도 사랑으로 용서하자 하는 마음으로 갔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상당히 만족하면서 돌아왔습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출연진의 기량 때문이지, 절대로 기획의 훌륭함 때문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해두고 싶습니다. 이번 공연은 지난 야외 오페라들의 단점을 보완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주최측의 호언으로 기대를 모았는데, 보완은 무슨, 별로 달라진 게 없더군요. 그야 큰소리를 쳐댄 만큼 어느 정도의 변화는 있었습니다. 음향은 확실히 <투란도트> 때보다 나아서, 조금은 집중하며 들을 수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야외는 야외. 바람이 거칠어지자 앞서 말했듯 미카엘라 같은 경우는 금세 소리가 약해지더군요. 애초에 운동장이라는 데가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 존재하는 곳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페라란 누가 뭐라고 해도 혼을 실은 개개인의 기량에 주안점을 두어 감상하는 장르인데, 가뜩이나 모아 줘야 할 목소리가 사방으로 분산된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마이크를 쓰게 되니까 가수들의 음성이 조금씩 변질되는 것도 마음에 걸렸고요.

또한 이번 공연은 테너 마리오 델 모나코의 아들 잔 카를로 델 모나코가 연출을 맡은 것으로도 인구에 회자되었는데, 확실히 1막만 놓고 본다면 근사한 무대였습니다. 수많은 엑스트라들과 소도구를 동원하여 세비야의 거리를 재현해 놓았고(병사들이 진짜 말을 타고 돌아다닐 정도였으니까요), 다섯 대의 카메라가 밀착 촬영한 무대를 대형 스크린에 투영함으로써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감상을 도왔습니다. 사실 운동장 공연을 관람할 때 제일 큰 문제가 무대와 객석 사이가 너무 멀어 뭐가 뭔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인데, 이번 공연은 무대 뒤에 커다란 스크린을 설치하는 것으로 그 점을 해결하는...듯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2막부터 강풍이 불어닥쳐 안전상의 이유로 스크린이 철거되자, 그 뒤부터는 새끼손가락 두 마디만 한 인물들이 무대 위에서 꼬물꼬물 돌아다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엄청 답답했습니다. 운동장 구석의 전광판으로 영상을 내보냄으로써 만회하려고는 했지만 사전에 조정을 제대로 안 했는지 형광색으로 얼룩덜룩해서 오히려 더 짜증스러웠어요. 거기다 스크린이 내려간 뒤에는 한동안 자막까지 나오지 않아 2막의 상당 부분을 가사도 모르고 보는 불상사까지 생겼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무대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모로 돌린 채 눈 아픈 전광판만 주시하는 반쪽짜리 관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기자랑 비평가들이 집중적으로 모인 까닭인지 15일자 공연은 신경을 꽤 쓴 모양으로 칭찬 일색이던데, 18일자 공연을 본 저로서는 그저 욕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아무리 악천후였다고는 해도 변변한 대책도 없이 관객들을 불편한 상태에 방치한 것은 주최측의 무성의 탓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어요. 87억이나 들여 야외 공연을 기획했으면 온갖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아닌가요.

앞서 무대 연출을 칭찬했지만, 2막부터는 그것도 굉장히 밋밋해집니다. 별 장식도 없이 조명만 잔뜩 세워놔서 번쩍번쩍 눈만 아파요. 더 이해가 안 되는 건 도대체 왜 공연 도중 뜬금없이 레이저 쇼를 벌이냐는 겁니다. 중요한 순간마다 꼭 초록색 레이저를 방사해서, 예쁘긴 했지만 주의가 마구 흐트러졌고, 진지해야 될 판국에 놀이 공원 같은 기분이 들어 좀 웃겼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것도 다 돈이었을 텐데, 차라리 스크린에나 투자해 주지 뭣 때문에 그렇게 무의미한 쇼를 벌였는지 지금도 아리송합니다. 시각적 청각적으로 풍요로운 공연이 모토였다지만 다들 별로 즐거워하는 것 같지도 않던데.

근래 오페라는 다소 고답스런 장르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어서, 많은 애호가들이 그 점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이 공연 역시 기본적으로는 돈을 벌겠다는 마음보다 오페라라는 예술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겠다는 취지로 기획되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대중 예술'이라는 것이 공연 도중 맥주를 마시며 버스럭버스럭 포테토칩을 먹는다거나, 쉴새없이 옆사람과 떠들어댄다거나, 핸드폰을 꺼내 십 분이 넘게 통화한다거나, 중간에 일어나서 나간다거나, 디카로 플래시를 터뜨려 가며 사진을 찍는 등등을 의미하는 거라면, 루리루리는 차라리 오페라가 속물적인 애호가들의 도취에 머무르기를 원하고 말겠습니다. 얼마나 초대권을 남발했는지 좌석의 90퍼센트가 협찬사 SK의 고객들로 채워졌다고 하는데(덕분에 저도 공짜로 볼 수 있었습니다만), 그 때문인지 자기 돈 주고 산 사람들에 비해 다들 열의도 없고 집중도도 떨어지고, 보다가 재미없다 싶으면 중간에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바람에 곤혹스러웠습니다. 나중에는 스탠드쪽 좌석의 절반 가량이 텅텅 비었더군요. 의심하고 싶지는 않지만 설마하니 주최측의 무성의도 무료 관객들을 경시했기 때문이라면, 도대체 이 기획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소리 높여 묻고 싶습니다. 애호가들에게는 징그럽게 욕만 먹고 대중을 포섭하는 데에도 실패한다면 표는 팔렸을지라도 실상 돈만 버린 것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차라리 그 돈과 시간으로 내실 있는 기획력을 키우고, 차세대 성악가들을 양성하고, 공연장을 몇 개 더 만드는 편이 앞날을 위해서도 이득이리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문화산업이 자본과 긴밀하게 결속되어 있다고는 해도, 변변한 기반도 없이 1, 2년 졸속으로 밀어붙인다고 되는 것이 아닌데, 요즘 나오는 기획들은 그 점을 망각하고 갈수록 유명무실하게 부피만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 누적된 모순점들이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기라도 하면 다른 양질의 기획들에까지 영향이 미치는 건 아닐까 못내 걱정스럽군요.
by 루리루리 | 2004/05/20 17:44 | 공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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