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로비츠와 토니 모리슨


나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좋다.

그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12살이었다. 우리 집 거실의 구석에서는 낡은 모노 음반이 삐꺽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어항과 전화기 사이의 틈에 들어가 만화책을 보고 있던 나는 소리가 몸을 열 때부터 숨조차 쉬지 못하고 귀를 기울였다. 선율이란 게 쾅 하고 침묵을 찢으며 터져 나와 가슴을 할퀴고, 두들기고, 마르고 섬세한 손가락으로 심장을 움켜쥐고 비트는 것인지 그때까지는 몰랐다. 음악을 들으며 울어본 것 역시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 전 존재가 이 신들린 듯한 피아니스트와 격정적인 지휘자의 손아귀에서 갈음되는 느낌이었다. 우스운 비유지만 호로비츠가 머리를 잡고, 토스카니니가 발을 잡고 양쪽에서 비틀며 그간의 세계를 쥐어짜내는 기분이었달까. 사람은 일생에 한 번, 운 좋은 사람은 두세 번 극적인 전환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데, 나는 그 중의 한 번을 12살때 낡은 오디오 앞에서 써버린 듯하다. 설령 그것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였다고 해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한 세계가 눈앞에 열리고 묵은 더께가 싸그리 씻겨나가는 느낌이란 거, 다시 오지 않는다 해도 충분히 황홀한 경험이었으니까.

이후로 리히터-카라얀, 아르헤리치-아바도, 베레초프스키-키타엔코 등 숱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을 들었고, 모두 뚜렷한 개성을 지닌 명연주였지만, 1992년 여름 어항 옆에 쪼그리고 앉아 30분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귀를 기울였던 그때의 감격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딱 한번 비슷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건 푸르트벵글러의 베토벤 9번을 들었을 때였다) 그래도 인생에 이러한 자극이 너무 많으면 한정된 스케일로 다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은 미쳐서 소리지르며 옷을 벗어 던지고 뛰쳐 나갈지도 모르니까, 앞날에 '여름으로 가는 문'을 열어주었던 그 귀중한 경험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싶다. 오디오에 호로비츠의 음반을 거는 것만으로도 지친 세포들이 되살아나는 기분이 들고, 그렇게 내 소유라고 말할 수 있는 광채로 삶을 휘감은 사람은 어떤 시련 앞에서도 강인할 수 있을 테니까.

요컨대 지금도 호로비츠의 라흐마니노프를 들으며 토니 모리슨의 <재즈>를 읽고 있다-라는 겁니다. 토니 모리슨과 '재즈'라면 빌리 할리데이나 엘라 피츠제럴드가 먼저 떠오르지만, 뭐 어떻습니까. 빗소리-호로비츠-라흐마니노프-토니 모리슨이라니 루리루리에게는 이 이상 바랄 것이 없는 환상의 조합인 걸요.



<잠깐만, 나는 저 여자를 알고 있어. 저 여자는 레녹스 거리에서 새들의 무리와 함께 살고 있어. 그녀의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고 있지. 그는 열여덟 짜리 소녀와 깊고 절망적인 사랑에 빠졌었어. 그 사랑은 너무나 슬프고 행복한 것이었지. 그는 단지 사랑의 감정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하여 소녀를 총으로 쏘아서 죽여버렸으니까. 소녀의 장례식에 가서 죽은 얼굴에 칼질을 하려고 하다가 그만 마룻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저 여자, 바이올렛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는, 교회 밖으로 쫓겨나 버렸지. 그러자 그녀는 눈길을 마구 달려갔던 거야.>
by 루리루리 | 2004/05/09 15:57 | 잡담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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