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의미 없는 얘기지만...

<로드 짐>을 읽고 있으려니 든 생각인데.

루리루리는 종종 <로드 짐>과 '잭 런던'을 헷갈립니다. 짐이라는 인물에 정신없이 몰두하면서도 툭하면 그의 이름을 잭 런던이라고 기억하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오류가 어디서 발생했을까 곰곰 캐 보니 어이없게도 음운이 비슷하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즉 <ㄹㄷ ㅈ>과 'ㅈ ㄹㄷ'이라는...;;

그러나저러나 조셉 콘래드는 몇 번을 읽어도 이루 형용할 수 없이 훌륭합니다. <암흑의 핵심>도, <서구인의 눈으로>도, <청춘>도, <노스트로모>도 좋았지만 제 베스트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이 <로드 짐>. 브라이얼리 선장의 자살 같은 명장면은 꿈에까지 등장할 정도였습니다. 자주 지적되듯이 콘래드의 보수주의적 정치관은 쉽게 공감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인간 그 자체의 핵심을 직격하는, 작품의 행간마다 넘쳐 흐르는 참으로 대가다운 통찰이야말로 이 사람의 진정 대단한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떻게 이런 소설을 모국어도 아닌 외국어로 쓸 수 있는지 그저 경탄할 따름입니다. 더구나 <암흑의 핵심>은 불과 한두 달 사이, <로드 짐>은 일년도 안 되어 완성하다니 저같은 범인은 감히 우러러볼 수도 없는 경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참으로 우스운 일이지만 네 번을 거듭해서 읽으면서도 루리루리는 여태 이 소설의 결말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네 번의 독서가 모두 짐과 그의 아내 주얼의 이야기에서 멈춰 버리는 거예요. 첫째로는 주얼의 묘사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 뒤로 나아가기가 어려웠다는 것과(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그래요. 계속 그 자리에 머물고 싶은 기분이랄까요), 둘째로는 이미 알고 있는 결말을 도저히 눈으로 확인할 엄두가 안 난다는 것. 엄밀히 말하자면 후자의 이유가 더 큽니다. 행복의 절정에서 파멸로 곤두박질치는 짐 청년의 모습 같은 거, 보고 싶지 않다구요. 진짜 바보 같은 얘기지만 솔직한 심정이 그런데 어쩌겠어요. 최소한 제가 뒷장을 넘기지만 않으면 짐은 자신을 용서하고 주얼과 함께 행복한 현재에 안주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까닭에 과연 루리루리가 이 소설의 결말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지는 매우 불투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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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모든 게 약해지더니 조용해졌어. 환영 같은 그 모습이 한 그루의 가느다란 나무처럼 바람에 흔들렸어. 창백한 계란형 얼굴이 고개를 떨궜어. 그러자 그녀의 표정도 분간할 수 없게 되었고, 어두운 눈동자 속을 가늠할 수도 없게 되었어. 흰 양쪽 소매가 어둠 속에 날개를 펼치듯이 날아오르더니, 말없이 그대로 정지한 채 그녀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어.'

뇌리를 떠나지 않고 맴도는, 창백한 절망의 심상.
by 루리루리 | 2004/05/04 23:14 |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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