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소녀

뒷북을 두들기며 보고 왔습니다.

감상은...음...주인공 소녀의 성격과 똑같은 작품이더군요. 예쁘고, 건강하고, 유쾌하고, 깔끔하고.

문제는 저나 그라드나 작품의 사이즈에 비해 너무 큰 기대를 걸고 갔다는 것. 워낙 추천이 많아서 꽉 짜이고 굴곡이 선명한 드라마를 예상했는데, 단순 깔끔한 소품이라 볼 때는 즐거웠어도 나올 때는 위장이 반만 찬 듯 허전했습니다. 소재를 다루는 방식도 단조롭고, 남자주인공의 비밀이 드러난 뒤의 전개는 완전히 예상 그대로라 싱겁기도 했고요. 또 '감성'을 내세워 예쁘고 단정하게 다듬은 작품은 취향이 아니라...(그래서 <초속 5센티미터>도 일찌감치 아웃)

활기찬 움직임이 매력적이고 구성이나 연출도 상큼했으며 전체적으로 잘 만든 작품인 건 확실하지만 그뿐. 오는 길에 그라드와 얘기를 나누며 생각한 것인데, 요즘 일본 애니메이션은 '정면으로' 돌진하는 작품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치열하게 주제와 맞서 싸우며 답을 찾거나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며 휘두르는 방식은 '쿨하지 않다'는 분위기일까요. 좁은 틀 안에서 절제된 연출로 제한적인 반응을 끌어내는 이야기가 많아진 듯...

물론 각각의 방식에 장단점은 있지요. 모든 이야기가 투우장의 황소처럼 아드레날린 과잉이라면 피곤해서 어디 살겠어요. 그러나 인간과 운명이라는 대주제를 비껴가면서 웃어넘기거나, 초연한 척하거나, '무심한 듯 시크하게' 에두르는 작품이 주를 이루는 것도 좀 그래요. 작고 아기자기한 소품이 주는 감동과 웃음의 대척점에는, 대하서사가 주는 묵직한 카타르시스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뭐,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 그런 치열함을 요구한 것은 아닙니다만, 어째 요즘은 포만감이 부족해-라며 푸념한 두 사람. 그러다보니 화제가 건담으로 옮겨가, "그 점에서 건담시드랑 데스티니는 나름 성실한 작품이었을지도" 운운하며 갑자기 비우주세기 옹호론을 펼치고 말았습니다. 문제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요즘 세상에 그처럼 겁없이 큰소리를 내는 물건은 흔치 않으니까...왜 결론이 이리 와서 매듭 지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이힛)
by 루리루리 | 2007/08/12 03:55 | 만화/애니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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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나르실 at 2007/08/19 00:05
본문과 상관없는 리플 달아서 죄송합니다만...

[춤추는 자들의 왕], 유진
인도 신화를 기반으로 쓴 소설. 신화와 철학에 대한 방대한 지식에 놀랐다.
한때 역사나 신화학을 전공해볼까 진심으로 고려했고 관련서적도 많이 보았는데, 완전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더라.
원래 인도신화 삼위일체 중 비슈누를 가장 좋아했는데, 그 후 브라흐마가 제일 좋아졌다.;;;
고3의 고단한 시절을 위로해주었고, 업데 속도가 빨라 매일 라니안을 드나들게 한 소설.
황금가지에서 출판된다길래 좋아했는데, 아직도 출판 안되고 있다.;;;
벌써 기다린 지 6년 정도인가...
제발 수정 빨리 해서 출판해 줘요....

서핑하다가 문득 발견한 글! >_< ㅎㅎㅎ
산천이 변해도 변함없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빼꼼)
Commented by 루리루리 at 2007/09/07 00:22
...왜...왠지 엄청나게 부끄럽고 죄송스럽고 그렇네요...////

그런데 벌써 6년입니까! 기왕이면 10년 꽉 채워서...(죄송) 그나마 기다려주시던 분들마저도 잊으셨을 것 같긴 하지만 산천이 변하기 전에 꼭 쇼부를 보겠습니다. 불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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